체중계 숫자 하나에 하루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던 내가 기계를 치워버린 이유
"삐비빅-" 하는 소리와 함께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강화유리의 촉감.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하던 일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보다 200g이 줄어 있으면 그날은 왠지 세상이 환해 보이고 점심에 파스타를 먹어도 될 것 같은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죠. 반대로 300g이라도 늘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머릿속에 '실패자'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고작 소수점 한 자릿수의 숫자가 제 하루의 날씨를 결정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0.2kg의 소수점이 결정하던 나의 하루 기온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내 몸을 아끼려고 운동을 하는 건가, 아니면 저 숫자를 깎아내려고 나를 괴롭히는 건가?' 친구와 즐겁게 저녁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일 아침 체중계 숫자가 무서운데'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도 숫자가 그대로면 순식간에 우울해졌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그 숫자가 가장 큰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몸 안의 수분량, 근육의 무게, 심지어 전날 먹은 음식의 염분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부종까지도 숫자는 그저 '살'로 퉁쳐서 보여주니까요.
여러분도 그런 적 없으신가요? 분명 거울 속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생기 있어 보이는데, 체중계 위에만 올라가면 모든 자신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경험 말이에요. 저는 그 숫자의 노예가 되어 살면서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진짜 신호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무언가를 씹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잠이 부족해서 몸이 붓는 현상들을 오직 '숫자'라는 잣대로만 판단하고 자책했죠.
거울 속의 나보다 숫자 속의 나를 더 믿었던 시간들
체중계를 베란다 구석으로 치워버리기로 결심한 건, 거울을 보며 제 자신에게 건넨 질문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너 지금 행복해?" 몸은 예전보다 말랐을지 몰라도, 거울 속의 눈빛은 생기가 없었습니다. 숫자를 줄이느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했더니 성격은 예민해졌고, 조금만 숫자가 올라도 자신을 몰아세우느라 마음엔 늘 멍이 들어 있었거든요. 저는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관리에서 오히려 건강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불안했습니다. 아침마다 발바닥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죠. '지금 내가 얼마나 쪘을까?', '관리를 안 해서 엉망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숫자가 보이지 않으니 비로소 내 몸의 '느낌'이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 아침은 다리가 덜 무겁네, 오늘은 피부에 생기가 있네, 오늘은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덜 차네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감각들 말이에요.
체중계 대신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하며
숫자를 버리고 나니 제가 세운 새로운 기준은 '컨디션'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한지, 옷을 입었을 때 바지 허리춤의 느낌이 어떤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보며 웃어줄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놀랍게도 체중계 숫자에 연연하지 않게 되자 폭식증도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내일 아침 숫자를 확인하지 않을 거니, 오늘 조금 많이 먹었다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 먹어치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된 거죠.체중계
대신 저는 '눈바디'라고 부르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더 사랑해주기로 했습니다. 숫자는 근육과 체지방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거울 속의 제 라인은 제가 얼마나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움직였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더라고요. 그리고 근육이 붙으면서 몸무게는 예전보다 늘었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더 날씬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숫자의 역설이었죠.
나를 괴롭히던 도구에서 벗어나 얻은 진짜 자유
지금 제 체중계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창고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가끔 건강검진을 할 때나 어쩔 수 없이 몸무게를 재야 하는 상황이 오지만, 이제는 그 숫자를 보고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아, 지금 내 몸무게는 이 정도구나" 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만 받아들일 뿐이죠. 그 숫자가 제 가치를 대변하거나 제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침에 본 숫자 때문에 점심 메뉴를 고민하거나 자책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체중계를 잠시만 치워보세요. 대신 내 몸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가 찌릿한지, 오늘 내 기분은 어떤지 물어봐 주세요. 우리는 숫자로 기록되는 상품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니까요.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때, 진짜 건강이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숫자의 소음 때문에 그 소중한 목소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귀 기울여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