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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타닥타닥'하다가 눈총받고 깨달은 키보드의 진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타닥타닥'하다가 눈총받고 깨달은 키보드의 진실

혹시 사무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키보드를 쳤는데, 주변 동료들의 시선이 제 정수리에 따갑게 꽂히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 있나요? 제가 딱 그랬거든요. 새로 산 기계식 키보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신나게 메일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옆자리 대리님이 조용히 메신저를 보내시더라고요. "OO 씨, 키보드 소리가 참... 경쾌하네요?^^" 그 뒤에 붙은 웃음 표시가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이른바 '키보드 유목민'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단순히 글자를 입력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키보드가, 사실은 제 통장 잔고를 갉아먹는 무시무시한 취미의 영역이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죠. 오늘은 제가 멤브레인부터 시작해 커스텀 키보드의 늪에 빠졌다 겨우 빠져나온(?) 눈물겨운 여정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청축의 경쾌함이 민폐가 되는 순간

처음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아마 '청축'일 거예요. 그 찰칵거리는 소리와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명확한 구분감! 처음 써봤을 때의 그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마치 타자기를 치는 듯한 기분에 취해 업무 효율이 200%는 올라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즐거움은 딱 일주일뿐이었습니다.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에서 저 혼자 리듬 게임을 하는 듯한 소음을 내뿜고 있었으니, 동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결국 저는 그 '경쾌한' 키보드를 집으로 가져가고, 급하게 저소음 적축 모델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도각도각' 혹은 '보글보글' 하는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한 게 말이죠.

윤활 지옥과 5시간의 사투

유튜브를 보다 보면 그런 영상들이 있습니다. 키보드 스위치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붓으로 기름을 칠하는 이른바 '윤활' 영상 말이에요. 처음엔 "세상에, 저걸 대체 왜 하고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 제 손에 핀셋과 구리스가 들려 있더라고요.

퇴근 후 밤 10시에 시작한 윤활 작업이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났을 때의 그 허탈함이란... 하지만 그렇게 튜닝을 마치고 난 뒤의 키보드 소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쇳소리가 섞인 챙챙거림은 사라지고, 마치 잘 익은 자갈을 굴리는 듯한 단단하고 정갈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거든요. 이 맛에 다들 그 고생을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타가 오기도 했습니다. "내가 고작 키보드 소리 좀 바꾸려고 잠까지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요.

키캡 하나가 치킨 다섯 마리 값이라고?

키보드 취미의 끝판왕은 역시 디자인, 즉 키캡입니다. 예쁜 색감의 키캡 세트 하나가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이게 플라스틱 조각인데 왜 이렇게 비싸?"라고 생각했지만, 제 손가락은 이미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죠. 소위 '졸업급'이라고 불리는 키캡을 끼워놓고 나면 확실히 책상 분위기가 확 삽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에요.조용한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화려한 키보드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작 엑셀 숫자 채우기와 무의미한 보고서 작성이 아닌가? 도구는 프로페셔널한데, 결과물은 과연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도 혹시 장비 욕심에 본질을 잊고 계신 건 아닌가요? (물론 장비가 좋으면 기분이 좋아서 일이 잘되긴 합니다만!)

결국 돌아온 곳은 '가장 나다운' 키보드

수십만 원을 들여 커스텀 키보드를 조립하고, 매달 새로운 스위치를 사 모으던 광기 어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조금 냉정해집니다. 지금 제 책상에 놓인 건 가장 비싼 모델도, 가장 소리가 화려한 모델도 아닙니다. 그냥 제 손가락이 가장 편안해하고, 오랜 시간 타이핑해도 피로감이 적은 적당한 가격대의 무선 키보드예요.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기계도 좋고, 장인의 손길이 닿은 커스텀 제품도 좋지만, 결국 테크 기기는 '나의 생활'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종결템'에 목매기보다는, 내가 일하는 환경과 내 손의 모양, 그리고 내 지갑 사정까지 고려한 나만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게 진짜 스마트한 소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키보드 매물을 검색하며 밤잠을 설치고 계신가요? 잠시 창을 닫고 지금 쓰고 있는 키보드를 부드러운 천으로 한 번 닦아주세요. 생각보다 그 녀석도 꽤 괜찮은 파트너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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