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음악 대신 굳이 서랍 속 아이리버를 꺼내 들고 출근한 일주일
아침 출근길, 이어폰을 귀에 꽂자마자 무심코 유튜브 뮤직의 '당신을 위한 믹스'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진짜 이 노래가 듣고 싶어서 듣는 건가, 아니면 그냥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니까 수동적으로 받아먹고 있는 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천 리스트와 쏟아지는 카톡 알림 사이에서, 음악은 어느덧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소음 차단용 배경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죠. 그래서 충동적으로 서랍 깊숙이 박혀 있던 유물 하나를 꺼냈습니다. 십수 년 전 중학생 시절, 손때 묻을 때까지 들고 다녔던 그 시절의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였습니다.
유물 부활시키기: 미니 USB 케이블을 찾아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관은 의외의 곳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죄다 USB-C 타입이나 라이트닝 케이블을 쓰다 보니, 이 녀석을 깨울 '미니 USB' 케이블이 집에 하나도 없더라고요. 동네 다이소를 세 군데나 돌고 나서야 구석진 곳에서 겨우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에 연결했더니 '띠링' 하는 윈도우 효과음과 함께 이동식 디스크가 잡히더군요. 256MB라는, 요즘 고화질 사진 한 장 크기보다 조금 큰 용량을 보며 헛웃음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이 예전엔 저만의 거대한 우주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알고리즘의 부재가 주는 의외의 자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수천만 곡을 1초 만에 검색해서 들을 수 있지만, 256MB의 MP3 플레이어에는 단 40~50곡 정도만 신중하게 골라 담아야 합니다. 예전처럼 CD를 리핑하거나 힘들게 구한 MP3 파일을 하나하나 옮기면서, 저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최신 차트 1위 곡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저만의 '인생 곡'들을 채워 넣는 과정은 마치 소중한 보석함을 정리하는 기분이었죠.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취향이 아니라, 내가 직접 발품 팔아 고른 소리들로만 채워진 리스트를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마주한 낯선 고요함
아이리버를 들고 첫 출근길에 올랐을 때의 어색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가방 깊숙이 집어넣고, 작고 가벼운 MP3 플레이어만 손에 쥐었습니다.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은 '눈'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지하철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거나 자극적인 숏폼 영상을 보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화면이 없는 MP3를 쓰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밖 풍경이나 사람들에게로 향하더군요.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 가사 한 줄 한 줄에 집중하게 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아, 이 노래의 베이스 라인이 이렇게 좋았었나?' 하고 새삼 놀라기도 했죠.
중간에 낀 광고도, 끊김도 없는 온전한 시간
유튜브를 보다가 중간에 튀어나오는 광고 때문에 맥이 끊기거나, 노래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오는 단톡방 알림 때문에 몰입도가 깨지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나와 음악뿐인 시간. 독자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시죠?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분위기가 확 깨져버리는 그 허무한 순간 말이에요. MP3 플레이어는 철저하게 오프라인입니다. 그 누구도 제 감상의 흐름을 방해할 수 없죠. 디지털 세상에서 완벽하게 고립되는 것이 이렇게 평온한 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음악
불편함이 선물해 준 의외의 효율성
물론 불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곡을 듣고 싶으면 다시 컴퓨터를 켜서 파일을 옮겨야 하고, 배터리 잔량도 늘 신경 써야 했죠. 하지만 이 '불편한 단계'들이 오히려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기술이 너무 편해지니까 우리는 선택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죠.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들으며 아티스트가 의도한 곡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스킵 버튼만 연타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업무 중에 집중력이 필요할 때도 스마트폰 대신 MP3를 켜두니 딴짓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줄어들더라고요.
디지털 디톡스, 거창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일주일간의 짧은 실험을 마치고 저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MP3만으로 사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이제는 습관적으로 스트리밍 앱을 켜지 않습니다. 대신 정말 집중하고 싶을 때, 혹은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할 때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구형 기기를 꺼냅니다. 꼭 MP3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필름 카메라든, 종이 책이든 상관없어요. 기술의 속도에 지친 여러분에게 한 번쯤 권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최신 기술의 혜택을 스스로 거절해 보는 경험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고 선명하게 만들어주는지 말이에요. 오늘 밤,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옛날 전자기기를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