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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 앞에서 10분째 서성인 이유, '별점'이 제 입맛을 결정하게 됐거든요

식당 문 앞에서 10분째 서성인 이유, '별점'이 제 입맛을 결정하게 됐거든요

배는 너무 고픈데 손가락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바로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집이 있는데도 말이죠. '그냥 들어갈까?' 싶다가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지도 앱을 실행합니다. 별점 4.2점. 음, 나쁘지 않네 싶다가도 최신순 리뷰를 필터링해 보니 '주인이 불친절해요'라는 글이 딱 하나 걸리더라고요. 그 순간 제 발걸음은 마법이라도 걸린 듯 굳어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15분을 더 걸어 별점 4.8점짜리 다른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런 적 없으신가요? 분명 내 배를 채울 음식을 고르는 건데, 내 직감보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별점 한 개를 더 믿게 되는 그런 상황 말이에요.

4.5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

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에 '실패'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참 좁아진 것 같습니다. 1만 원짜리 점심 한 끼를 먹더라도 절대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강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어요. 포털 사이트나 배달 앱에서 별점 4.5점은 이제 '평균'이 되어버렸고, 4.0점만 돼도 '뭔가 문제가 있는 집인가?'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아예 필터 설정에서 4.5점 이하 식당은 검색 결과에 나오지도 않게 해뒀더라고요. 우리가 맛을 느끼기도 전에 데이터가 먼저 맛을 규정해버리는 셈이죠.

문제는 이 '별점'이라는 수치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의 주관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저는 한 번 이런 경험을 했어요. 별점이 아주 높은 파스타 집에 갔는데, 솔직히 제 입맛에는 너무 짜고 평범했거든요. 그런데도 속으로는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하는데 내 입맛이 오늘 좀 이상한가?'라며 오히려 제 미각을 의심하고 있더라고요. 다수가 정해준 정답에 내 감각을 끼워 맞추려는 모습, 이게 과연 건강한 소비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리뷰 이벤트'가 만들어낸 가짜 천국

리뷰가 정말 공정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우리가 보는 별점 뒤에는 거대한 '기브 앤 테이크'가 숨어 있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리뷰 약속하면 서비스 드려요!"라는 문구, 이제는 식당 테이블마다 붙어있는 필수템이잖아요. 콜라 한 캔, 군만두 한 접시에 마음이 약해진 우리는 '별 다섯 개'를 기꺼이 상납합니다. 사장님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기 힘든 한국인의 정(情) 문화까지 더해지니, 별점은 점점 상향 평준화되어 변별력을 잃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정직하게 장사하면서 리뷰 이벤트에 의존하지 않는 노포나 작은 식당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손맛은 기가 막힌데 스마트폰 조작이 서툰 할머니 식당의 별점이 3.5점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그곳의 진정한 맛을 경험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짜 안도감 속에서 우리는 진짜 '숨은 맛집'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평점 테러'와 무너지는 신뢰의 선

물론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끔 뉴스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리뷰들을 보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비가 와서 배달이 늦었으니 별점 1점 드려요", "아이가 먹을 거라 맵지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살짝 매콤해서 1점요" 같은 글들 말이죠. 별점은 이제 단순한 만족도의 표시를 넘어 사장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습니다.식당

익명성 뒤에 숨어 던지는 별점 1점이 누군가에게는 밤잠을 설치게 하는 비수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합니다. 식당 주인들은 이제 맛 연구보다 리뷰 관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처지가 됐죠. 손님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리뷰가 무서워 웃으며 응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의 현장, 그 뒤편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건 무엇일까요?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는 '평점'이라는 숫자로만 관계를 맺는 이 건조한 방식이 가끔은 참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가끔은 실패할 권리를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전부터 작은 실험을 시작했어요. 모르는 동네에 갔을 때 일부러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넣고 발길이 닿는 대로 식당을 골라보는 겁니다. 간판이 조금 낡았어도, 안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좋으면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불안하더라고요. '맛없으면 어떡하지?', '돈 아까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결과가 생각보다 흥미로웠습니다. 별점 데이터에는 존재하지 않던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게 됐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간이 심심하다'며 평점 테러를 당했을지 모를 평양냉면집이 제게는 인생 맛집이 되기도 하고, 조금 무뚝뚝해 보이던 사장님이 건네는 투박한 인사가 세련된 프랜차이즈의 매뉴얼화된 친절보다 훨씬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니, 오히려 뜻밖의 발견이 주는 기쁨이 배가 되더라고요.

세상은 점점 더 효율적이고 오차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데이터가 우리의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가끔은 그 데이터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우연한 즐거움까지 차단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점심은 지도 앱 대신 여러분의 코와 눈, 그리고 직감을 한번 믿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설령 맛이 좀 없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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