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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옆집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게 당연해졌다고요? 사라진 관계의 온기를 찾아서

저는 어릴 적, 윗집 아랫집을 오가며 밥을 얻어먹고 놀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갑자기 간장이 떨어지면 옆집에 뛰어가 빌려오곤 했죠. 명절이면 서로 음식을 나누고, 누가 아프면 죽을 끓여 날라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가까운 사이를 의미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저희 집 앞 현관문이 굳게 닫히는 순간, 옆집은 물론이고 같은 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도 ‘우리 옆집에 누가 살더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진 않으신가요?

공동체, 언제부터 '노력'이 필요한 단어가 됐을까?

언젠가부터 공동체라는 단어는 신문 기사나 보고서에서나 볼 법한 거창한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인간적인 유대가 희미해진 자리에는 ‘취미 공동체’,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생겨났죠. 물론 이런 모임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문득 궁금해집니다. 왜 우리는 이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심지어는 회비를 내면서까지 애써서 ‘공동체’를 찾아다녀야만 하는 걸까요? 예전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삶의 터전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맺어졌던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바쁨’과 ‘효율성’을 꼽고 싶습니다. 팍팍한 도시 생활 속에서 각자의 스케줄은 너무나 빡빡하고,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하거나 에너지를 쓰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집니다. 괜히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보다는 이어폰을 끼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견을 펼치지만, 현실 공간에서는 그 익명성을 깨고 나서는 것에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옆집과의 관계는 점점 더 ‘없는 관계’가 되어가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알아서 잘 살겠지'와 '괜히 피해 줄까 봐' 사이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면서 '각자 알아서 잘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옆집에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알 필요도 없고,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다는 태도죠. 이런 태도는 얼핏 보면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혹시 내가 타인에게 불편을 줄까 봐’, 혹은 ‘타인이 나에게 불편을 줄까 봐’ 하는 미묘한 경계심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며칠 전,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며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뛰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들린다면서요. 저희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있었고, 층간 소음을 낼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거든요. 알고 보니 저희 집이 아니라 옆집에서 나는 소음이었는데, 아랫집 입장에서는 어느 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무작정 올라와 본 것이었죠.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알고 있었다면, 이런 오해가 생기기 전에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작은 불편함도 소통의 부재 때문에 불신으로 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모르는 관계는 작은 불씨도 쉽게 큰 싸움으로 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옆집

'관계 맺기'에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대

최근에는 '소통을 위한 공동주택 가이드라인' 같은 것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층간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안내문이라든지, 이웃 간 예절을 지키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죠. 이런 가이드라인이 필요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합니다.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녹아들었던 상식과 배려가 이제는 ‘규칙’으로 명시되어야 할 만큼 멀어진 셈이니까요. 사람들은 이웃에게 말을 걸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혹시라도 거절당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주저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낯선 이와도 쉽게 대화하지만, 현실의 옆집 이웃과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묵묵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효율성과 편의성을 쫓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옆집 이웃의 존재는 때로는 가족만큼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아플 때, 급하게 택배를 맡길 곳이 필요할 때, 아이를 잠시 맡겨야 할 때,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순간들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유료 서비스를 검색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버렸습니다.

따뜻한 이웃의 온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라진 관계의 온기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거창한 노력보다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건네는 가벼운 눈인사, 먼저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 이사 온 이웃에게 작은 떡을 돌리거나, 버려진 택배 상자를 치우는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어색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이 반복될 때, 딱딱하게 굳어있던 관계의 벽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할 겁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간섭이 되거나,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 서로 얼굴은 알고 지냅시다’ 정도의 기본적인 관계만이라도 회복된다면, 우리는 좀 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형성될 수 있을 겁니다. 익명성 뒤에 숨는 대신, 현실 속에서 작은 온기를 나누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다시 이웃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옆집 이웃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요? 문득 궁금해지지 않으시나요?

#이웃 #공동체 #관계 #개인주의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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