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도시재생 예산 20조, 통계 뒤에 아무도 말 안 해주는 주민 쫓아내기 구조

지난 10년간 전국 도시재생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20조 원에 가깝다. 낙후된 동네에 공원을 만들고, 골목을 정비하고, 문화시설을 지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동네에 살던 원주민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이동 데이터를 뜯어보면, 도시재생사업이 완료된 지역의 원주민 전출률은 사업 전보다 평균 7.3%포인트 증가했다. 도시를 재생하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정부 예산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로 사라지는 골목

도시재생의 두 얼굴: 향상된 환경과 상승한 지대

부동산 가격 상승이 몰고 온 배제 효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시행된 79개 지역의 평균 땅값은 사업 전보다 3년 만에 38% 상승했다. 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21%)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주택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서울 창신·숭인동의 경우 재생사업 이후 전세가가 평균 52% 뛰었다. 세입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에 내몰렸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발적인 선택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재정비 후 이주'가 아니라 '가격 압박에 의한 퇴거'라는 구조적 현실을 정책 지표는 반영하지 않는다.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

도시재생의 공식 목표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이다. 하지만 사업 평가 기준에는 '원주민 정주율'이나 '저소득층 주거 안정성'이 빠져 있다. 대신 '방문객 수 증가', '상업시설 입점률', '지역 경제 활성화 지수' 같은 성과 지표만 존재한다. 이는 도시재생이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 자본과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한 '장소 마케팅'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2024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23개 도시재생사업 중 15곳이 원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주하는 세입자 가족

통계가 가린 민낯: 전출률과 실질 소득 변화

'사업 만족도 87%'의 함정

국토교통부는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로 '주민 만족도 87%'를 자주 내세운다. 하지만 이 통계는 사업 이후에도 계속 그 동네에 남아 있는 주민들만 대상으로 조사한 값이다. 이미 쫓겨난 사람들은 표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른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다. 실제로 사업 시행 2년 차부터 쫓겨나기 시작한 원주민들의 평균 소득 변화를 추적한 연구(서울대 도시연구센터, 2025)에 따르면, 이사 간 지역의 주거비 부담률은 평균 19% 증가했고, 통근 시간도 1.3배 늘어났다. '재생'된 도시는 남은 사람들에게는 좋았지만, 떠난 사람들에게는 악화였다.

해외 사례: 서울보다 먼저 경고등을 켠 도시들

미국 뉴욕 할렘 지역은 2000년대 초 재개발 이후 원주민 흑인 인구의 3분의 1이 이주해야 했다. 독일 베를린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2021년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했지만, 헌법 불일치 판결로 무산됐다. 영국 런던은 '커뮤니티 토지 신탁(Community Land Trust)' 제도로 주민 스스로 토지를 소유하게 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은 이 중 어떤 모델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 단기적 경기 부양 효과에만 집중한 결과, 원주민 보호 장치는 여전히 '권고 사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업화된 동네 풍경

구조적 원인: 예산 구조와 민관 협력의 함정

민간 자본 유치가 필수인 시스템

도시재생사업의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더 선명해진다. 정부 예산은 사업의 30~40%만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간 자본에 의존한다. 민간 자본이 들어오면 수익을 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지대 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원주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을 유지하는 것은 민간 입장에서 '비효율'이 된다. 결국 공공이 민간의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구조 속에서 '재생'이라는 이름의 '환경 미화'와 '원주민 퇴출'이 동시에 진행된다. 2026년 현재, 전국 도시재생 선도지역 35곳 중 관리형 임대료를 적용하는 곳은 단 3곳에 불과하다.예산

주거권 대신 '경관 개선'에 꽂힌 정책

문제의 근원은 도시재생이 '주거 정책'보다 '경관 정책'에 가깝다는 점이다. 예산 배분 내역을 보면, 골목 정비, 벽화 사업, 공원 조성 등 물리적 환경 개선에 전체 예산의 62%가 할당된다. 반면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이나 임대료 안정 장치에는 8%만 배정됐다. 예쁜 동네를 만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산 배분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라는 근본적인 가치 설정의 문제다.

대안의 실마리: 독일과 일본에서 찾은 해법

독일의 사회적 임대주택 의무화와 조합 모델

독일은 도시재생 구역 내 신축 건물의 30~50%를 사회적 임대주택으로 의무화한다. 또한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재생사업의 주체가 되는 '바우그루페(Baugruppe)' 모델이 활성화돼 있다. 이를 통해 외부 자본의 개입 없이 주민 스스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임대료 상승을 억제한다. 서울시가 2023년 도입한 '주택협동조합' 사업이 이와 유사하지만, 전체 도시재생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일본의 지역 주택 계획과 임대료 통제

일본은 2000년대 초 '마을 만들기 조례'를 통해 지역별로 상업화 비율과 임대료 상한을 설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도쿄의 경우 재개발 지역 내 원주민 재정착률을 80% 이상 유지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승인한다. 이 조건을 어기면 인허가가 취소된다. 한국은 이런 법적 제재 장치가 전무하다. 고작해야 '권장 사항' 수준의 지침만 있을 뿐이다.

결론: 통계가 말하지 않는 추방의 진짜 비용

도시재생 예산 20조 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더 예뻐진 동네, 올라간 땅값, 늘어난 방문객. 그 이면에는 집을 잃고 떠난 사람들, 더 먼 곳으로 밀려난 저소득층, 단절된 지역 공동체가 있다. 이들의 삶을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연구는 아직 없다. 통계청이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생'이라는 아름다운 말 뒤에 숨겨진 추방의 구조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당신이 살고 싶은 도시는, 당신 같은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는 도시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떠나야 유지되는 도시인가?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 #주거불평등 #원주민퇴출 #예산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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